
어느덧 대림 제2주간도 끝자락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난 화요일부터 서울대교구의 많은 본당들은 미사를 주례사제와 봉사자들 중 몇몇 형제 자매님들하고만 봉헌하고 있다. 국가의 방역지침을 적극적으로 준수하면서, 미사를 봉헌하고자 하니, 교구에서 지침을 내렸어도 주임신부님들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음을 어렵지 않게 생각해 볼 수 있겠다.
20명이라는 인원 제한이 있기에, 선착순으로 미사 참례자를 받아들이는 본당, 제비뽑기로 미사 참례자를 정하는 본당, 레지오 쁘레시디움으로 돌아가면서 미사 참례자를 돌아가게끔 하는 본당, 미사 지향을 봉헌한 사람들만 받아들이는 본당,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미사를 중지한 본당 등등 각양각색의 모습들이 교구 안에 등장하고 있다.
여느 본당은 주일에 평화방송 미사를 시청한 사람들이 오후 일정 시간에 영성체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본당도 있고,(부득이하게 미사를 참례하지 못하는 신자들이니 봉성체 개념으로 영성체를 허락함),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잘 준비할 수 있도록 일정시간 고해소에 신부들을 상주시키는 본당들도 있다. 아무쪼록, 각 본당 주임신부님들이 지금껏 사목을 해 오시면서 무엇을 강조하면서 살아왔는지, 가르침과 삶이 일치하는지가 여러 결정들을 통해 빙산의 일각 마냥 드러나는 모습이다. 아무쪼록 교우들은 영혼의 구령에 최선을 다하시는 주임 신부님이심을 굳게 믿고 본당 신부님들의 말씀을 잘 듣고 살아가시길 바란다. 교우들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으니,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면서 서론이 길어졌다. 이해하시는 너그러움을 가져주실 것이라고 본다.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시기를 보내는 교회가 이제 곧 대림초 3개를 밝히는 대림 제3주일(장미주일)을 맞이한다.
오늘 헌화회 자매님들께서 대성전과 소성전에 예수님께서 오실 구유를 정성스럽게 꾸미시는 모습을 보았다.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시는 모습에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를 표현하고 싶다. 아기 예수님을 아직 구유에 안치하지는 않았지만, 구유가 들어서니 성전이 내심 따뜻해 지는 느낌이다. 지금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 소수의 신자들만이 성당을 오고가고 해서 본당이 을씨년스럽기는 하지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삶 속에 각자 자신의 구유를 마련해 드릴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집안에 트리를 꾸미고, 대림환에 초를 밝히고, 작은 구유를 설치하는 것도 각자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의 표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기 예수님의 성탄이 구유에서 이뤄졌다는 본질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구유에서 나셨다는 것은 바로 축사 안에서 가축의 여물통을 요람삼아 태어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가난을 상징하는 것을 넘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유 안에서 태어나신 주님을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게 맞아들이는 길은, 가난을 실천하고, 갓난아기와 같이 남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분들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자선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바로 그 자리가 진정 주님께서 오시는 구유의 자리가 됨을 우리 모두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번 주일에 맞이하는 대림 제3주일에 우리는 자선주일을 지낸다. 이것이 꼭 우연은 아닐 것이다.
우리 본당 공동체 구성원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여분의 것이 아닌,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구체적인 자선의 실천 안에 오시는 주님을 기다릴 수 있다면, 코로나19의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서로에게 희망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이사61,1)


어느덧 대림 제2주간도 끝자락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난 화요일부터 서울대교구의 많은 본당들은 미사를 주례사제와 봉사자들 중 몇몇 형제 자매님들하고만 봉헌하고 있다. 국가의 방역지침을 적극적으로 준수하면서, 미사를 봉헌하고자 하니, 교구에서 지침을 내렸어도 주임신부님들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음을 어렵지 않게 생각해 볼 수 있겠다.
20명이라는 인원 제한이 있기에, 선착순으로 미사 참례자를 받아들이는 본당, 제비뽑기로 미사 참례자를 정하는 본당, 레지오 쁘레시디움으로 돌아가면서 미사 참례자를 돌아가게끔 하는 본당, 미사 지향을 봉헌한 사람들만 받아들이는 본당,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미사를 중지한 본당 등등 각양각색의 모습들이 교구 안에 등장하고 있다.
여느 본당은 주일에 평화방송 미사를 시청한 사람들이 오후 일정 시간에 영성체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본당도 있고,(부득이하게 미사를 참례하지 못하는 신자들이니 봉성체 개념으로 영성체를 허락함),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잘 준비할 수 있도록 일정시간 고해소에 신부들을 상주시키는 본당들도 있다. 아무쪼록, 각 본당 주임신부님들이 지금껏 사목을 해 오시면서 무엇을 강조하면서 살아왔는지, 가르침과 삶이 일치하는지가 여러 결정들을 통해 빙산의 일각 마냥 드러나는 모습이다. 아무쪼록 교우들은 영혼의 구령에 최선을 다하시는 주임 신부님이심을 굳게 믿고 본당 신부님들의 말씀을 잘 듣고 살아가시길 바란다. 교우들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으니,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면서 서론이 길어졌다. 이해하시는 너그러움을 가져주실 것이라고 본다.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시기를 보내는 교회가 이제 곧 대림초 3개를 밝히는 대림 제3주일(장미주일)을 맞이한다.
오늘 헌화회 자매님들께서 대성전과 소성전에 예수님께서 오실 구유를 정성스럽게 꾸미시는 모습을 보았다.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시는 모습에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를 표현하고 싶다. 아기 예수님을 아직 구유에 안치하지는 않았지만, 구유가 들어서니 성전이 내심 따뜻해 지는 느낌이다. 지금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 소수의 신자들만이 성당을 오고가고 해서 본당이 을씨년스럽기는 하지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삶 속에 각자 자신의 구유를 마련해 드릴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집안에 트리를 꾸미고, 대림환에 초를 밝히고, 작은 구유를 설치하는 것도 각자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의 표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기 예수님의 성탄이 구유에서 이뤄졌다는 본질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구유에서 나셨다는 것은 바로 축사 안에서 가축의 여물통을 요람삼아 태어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가난을 상징하는 것을 넘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유 안에서 태어나신 주님을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게 맞아들이는 길은, 가난을 실천하고, 갓난아기와 같이 남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분들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자선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바로 그 자리가 진정 주님께서 오시는 구유의 자리가 됨을 우리 모두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번 주일에 맞이하는 대림 제3주일에 우리는 자선주일을 지낸다. 이것이 꼭 우연은 아닐 것이다.
우리 본당 공동체 구성원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여분의 것이 아닌,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구체적인 자선의 실천 안에 오시는 주님을 기다릴 수 있다면, 코로나19의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서로에게 희망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이사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