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 안에서 누군가에게 투명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는 것은 그 사람의 도덕적, 윤리적 근간인 “신뢰”가 흔들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신뢰가 무너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 네트워크 환경이 발달되기 전에는 세상의 권력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통치술 중에 하나가 “기밀유지”였다. 사람들이 적게 알면 적게 알수록 조용히 그리고 신속하게 어떤 일을 자신이 원하는 목적대로 처리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세기 5G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은 감출 수 있는 것이 솔직히 없다.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참 순진한 생각이다. 그리고 open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늉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돌릴 수가 없다. 금방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굳이 교회 내에서 혹은 기관의 책임자가 굳이 기밀유지의 방법을 사용하면서까지 어떤 공동체를 사목하거나 운영 관리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통제함으로써, 기밀을 유지함으로써, 철옹성을 높게 쌓는 모습은 누구를 위한 것이고, 무엇을 위한 것일까? 이런 모습은 절대로 교회적이지도 복음적인 모습이 아닐 것이다.
만일 이 신뢰를 회복하고 싶은 의지가 있다면,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행동의 공간을 열어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고, 통제와 기밀유지가 지금까지 사용한 방식이라면 이제는 그것을 버려야 할 때가 왔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세워진 공동체는 통제하려고 들지도 않고, 기밀을 생산해 내지 않는다. 그로써 사람들은 불신과 의심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 공동체 안에 신뢰가 회복되어지기를 희망해 본다.
이 공동체의 모습이 교회가 드러내야 할 표징인 하느님 나라의 실현에 있는가?
아니면 우편번호 05678의 송파구 송파대로 36길 34의 고립된 섬(孤島)으로 존재하고자 하는가?
끝으로 한 가지 더 생각해 보도록 하자.
우리 각자의 신앙은 하느님 사랑의 현존을 자신의 삶의 자리에 드러내는 사랑의 발로인가? 아니면 신앙이 내적 지성소의 영역에서 마음의 평화만을 바라는 힐링의 다른 표현인가?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마르4,22)
교회 안에서 누군가에게 투명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는 것은 그 사람의 도덕적, 윤리적 근간인 “신뢰”가 흔들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신뢰가 무너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 네트워크 환경이 발달되기 전에는 세상의 권력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통치술 중에 하나가 “기밀유지”였다. 사람들이 적게 알면 적게 알수록 조용히 그리고 신속하게 어떤 일을 자신이 원하는 목적대로 처리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세기 5G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은 감출 수 있는 것이 솔직히 없다.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참 순진한 생각이다. 그리고 open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늉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돌릴 수가 없다. 금방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굳이 교회 내에서 혹은 기관의 책임자가 굳이 기밀유지의 방법을 사용하면서까지 어떤 공동체를 사목하거나 운영 관리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통제함으로써, 기밀을 유지함으로써, 철옹성을 높게 쌓는 모습은 누구를 위한 것이고, 무엇을 위한 것일까? 이런 모습은 절대로 교회적이지도 복음적인 모습이 아닐 것이다.
만일 이 신뢰를 회복하고 싶은 의지가 있다면,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행동의 공간을 열어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고, 통제와 기밀유지가 지금까지 사용한 방식이라면 이제는 그것을 버려야 할 때가 왔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세워진 공동체는 통제하려고 들지도 않고, 기밀을 생산해 내지 않는다. 그로써 사람들은 불신과 의심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 공동체 안에 신뢰가 회복되어지기를 희망해 본다.
이 공동체의 모습이 교회가 드러내야 할 표징인 하느님 나라의 실현에 있는가?
아니면 우편번호 05678의 송파구 송파대로 36길 34의 고립된 섬(孤島)으로 존재하고자 하는가?
끝으로 한 가지 더 생각해 보도록 하자.
우리 각자의 신앙은 하느님 사랑의 현존을 자신의 삶의 자리에 드러내는 사랑의 발로인가? 아니면 신앙이 내적 지성소의 영역에서 마음의 평화만을 바라는 힐링의 다른 표현인가?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마르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