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자신의 삶 안에서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고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가 중요한가? 아니면 “어떻게 보여지느냐?”(어떤 이미지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한가?
주변을 바라보면 이미지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미지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평판에 혹은 실리에 득이 될 때와 안 될 때를 기가 막히게 계산하고 움직인다.
왜? 많은 사람들이 그 이미지에 현혹되어 살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스스로가 올바른 판단을 내린다고 굳게 믿는다. 그리고 그 판단 안에서 좋은 선택을 혹은 결정을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은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그 판단력의 근거가 상대방의 삶과 생각이 아니라 이미지로 결정되어지는 경우들이 많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판단을 재고하시겠는가?
예를 한 번 들어보겠다.
사람들은 투표를 할 때 후보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곰곰이 들여다 볼까? 후보자가 무슨 가치관을 지니고 있고, 누구에게(사회 어느 계층에) 관심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고려하며 투표에 임할까? 그렇다고 생각은 하겠지만 실제로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실제로 후보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람과 대화를 해본 적도 없고, 멀리서만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람의 보여지는 “이미지”가 좋다면, 사람들은 그가 시민들을 위해서 좋을 일을 할 것이라 막연히 생각하고 믿어 버린다.
그러나 그 후보자가 참으로 시민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 공공선을 위한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그가 실제로 관심을 갖고 하는 일”과 “그가 만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그리고 “일상에서 살아내는 말과 행동”을 통해 두고봐야 하는 것이다. 그의 생각과 삶이 “실제로”, “어디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알기는 쉽지 않다. 함께 사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알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바깥에서도 새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새어나가기에 종종 측근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가 그럴듯한 이미지로만 포장해서 자기 이익과 편안함을 챙기려는 사람인지, 아니면 진짜 시민과 사회를 위하여 봉사하고자 하는 사람인지 알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대화와 행동들 속에 그가 관심 있어하는 것과 그의 생각과 삶이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코 한두 걸음 떨어진 사람들은 절대로 알 수 없다. 이미지라는 포장지가 너무나도 두껍기 때문이다.
사제들, 수도자들, 봉사자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여러분 각자 자신을 한 번 잘 들여다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미지로 먹고 사는 연예인이 아니고서야 굳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럴 필요가 있겠는가? 그리스도인은 “이미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즉 “삶”으로, 주님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렇다.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 각자의 삶이 그리스도인임을 증거하도록 했으면 좋겠다. 가톨릭 교회 안에서 진리의 길을 걸어야 하는 평신도들, 수도자들, 사제들은 삶을 보여주는 식으로 가볍게 살아가지 말고, 진정성을 갖고, 작은 행동 하나라도 정성스럽게, 복음을 실천하는 마음으로, 삶 속에서 하고자 하는 것, 그 자체를 목적으로 대하며 살아가도록 하자. 누가 보든, 안 보든 묵묵히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신앙인인 우리들은 누가 볼 때, 안 볼 때를 가려가며 주님의 길을 선택적으로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곳 공동체가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지라는 포장지를 벗겨낸 “생각과 행동과 삶”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되시길 희망한다.
"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에페4,24)

여러분은 자신의 삶 안에서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고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가 중요한가? 아니면 “어떻게 보여지느냐?”(어떤 이미지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한가?
주변을 바라보면 이미지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미지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평판에 혹은 실리에 득이 될 때와 안 될 때를 기가 막히게 계산하고 움직인다.
왜? 많은 사람들이 그 이미지에 현혹되어 살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스스로가 올바른 판단을 내린다고 굳게 믿는다. 그리고 그 판단 안에서 좋은 선택을 혹은 결정을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은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그 판단력의 근거가 상대방의 삶과 생각이 아니라 이미지로 결정되어지는 경우들이 많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판단을 재고하시겠는가?
예를 한 번 들어보겠다.
사람들은 투표를 할 때 후보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곰곰이 들여다 볼까? 후보자가 무슨 가치관을 지니고 있고, 누구에게(사회 어느 계층에) 관심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고려하며 투표에 임할까? 그렇다고 생각은 하겠지만 실제로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실제로 후보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람과 대화를 해본 적도 없고, 멀리서만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람의 보여지는 “이미지”가 좋다면, 사람들은 그가 시민들을 위해서 좋을 일을 할 것이라 막연히 생각하고 믿어 버린다.
그러나 그 후보자가 참으로 시민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 공공선을 위한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그가 실제로 관심을 갖고 하는 일”과 “그가 만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그리고 “일상에서 살아내는 말과 행동”을 통해 두고봐야 하는 것이다. 그의 생각과 삶이 “실제로”, “어디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알기는 쉽지 않다. 함께 사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알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바깥에서도 새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새어나가기에 종종 측근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가 그럴듯한 이미지로만 포장해서 자기 이익과 편안함을 챙기려는 사람인지, 아니면 진짜 시민과 사회를 위하여 봉사하고자 하는 사람인지 알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대화와 행동들 속에 그가 관심 있어하는 것과 그의 생각과 삶이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코 한두 걸음 떨어진 사람들은 절대로 알 수 없다. 이미지라는 포장지가 너무나도 두껍기 때문이다.
사제들, 수도자들, 봉사자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여러분 각자 자신을 한 번 잘 들여다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미지로 먹고 사는 연예인이 아니고서야 굳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럴 필요가 있겠는가? 그리스도인은 “이미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즉 “삶”으로, 주님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렇다.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 각자의 삶이 그리스도인임을 증거하도록 했으면 좋겠다. 가톨릭 교회 안에서 진리의 길을 걸어야 하는 평신도들, 수도자들, 사제들은 삶을 보여주는 식으로 가볍게 살아가지 말고, 진정성을 갖고, 작은 행동 하나라도 정성스럽게, 복음을 실천하는 마음으로, 삶 속에서 하고자 하는 것, 그 자체를 목적으로 대하며 살아가도록 하자. 누가 보든, 안 보든 묵묵히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신앙인인 우리들은 누가 볼 때, 안 볼 때를 가려가며 주님의 길을 선택적으로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곳 공동체가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지라는 포장지를 벗겨낸 “생각과 행동과 삶”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되시길 희망한다.
"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에페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