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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P)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 『최종 문서』요약

하상넷
2025-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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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

『최종 문서』요약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 친교, 참여, 사명

 

[서론]

 

교회 생활의 모든 새로운 길은 원천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님과의 만남을, 부활을 통해 새롭게 경험하는 것처럼, 성령 안에서의 대화를 통해 우리 가운데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체험하게 된다. 우리는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의 여정 동안, 모든 단계마다 드러나는 하느님 백성의 ‘신앙 감각’의 지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 친교, 참여, 사명’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이 여정 중심에, 교회를 향한 쇄신의 부르심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1-4] 시노드 여정은 우리로 하여금, 공의회가 ‘신비인 교회’와 복음을 들음으로써 지속적인 회개를 통해 거룩해지도록 부르심 받은 ‘하느님 백성인 교회’에 대하여 가르친 내용을 실현하도록 이끌어준다. 이는 결과적으로 공의회의 결과들을 더욱 진지하게 수용하는 행위로서 그 예언적 힘을 다시 발휘하게 된다. 이는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 제1회기에 대한 「종합 보고서」가 교회의 삶에 대한 중요한 몇 가지 주제를 제시하는 데에서 재확인된다: (1) 교회가 마주해야 하는 실질적인 질문(1-3항), (2) 시노드의 연구 대상과 이행에 필요한 역할(4-8항), (3) 시노드의 후속 열매들에 대한 주제(9-10항). 그리고 이러한 주제들에 대한 논의는 제2회기 동안 교회들이 보내온 여러 의견과 함께 성령 안에서의 대화로 결실을 맺게 되었다.[5-10]

『최종 문서』는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제1부) ‘시노달리타스의 synodalitas 핵심’을 이해하기 위한 신학적이고 영성적인 토대; (제2부) 공동체와 은사와 직무를 통해 확인되는 관계들의 회심; (제3부) 시대적 문화 안에서 수행되는 식별, 결정과 평가의 실천; (제4부) 고유한 은사들의 관계 설정의 새로운 방식; (제5부) 모든 하느님 백성이 받아야 하는 ‘시노달리타스적 양성’의 필요성. 이 문서로 인해 우리는 이미 많은 교회 공동체가 끊임없는 경험의 일부가 됨을 인정하고 증언하는 것이다.[11-12]

 

 

[제1부 시노달리타스의 핵심]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베드로와 마리아 막달레나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마리아 막달레나를 사도들의 사도로 인정하면서 확인되는 ‘상호 의존성’이 시노달리타스의 핵심이라는 점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를 통해 하느님의 백성 모두가 존재론적으로 신앙 안에서 일치되어야 한다. 바로 그 일치를 우리는 시노드 과정을 통해, 한데 모여 하느님 백성이 되는 “영적인 맛”을 경험하는 것으로 확인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일치는 ‘아직 시간 안에서 순례하면서도 이미 천상 교회와 친교를 이루는’ 시노달리타스와 사명의 역사적 공동체적 주체인 하느님 백성으로 확장된다. 교회는 분명 그리스도로부터 인류 전체의 유대, 관계와 형제애의 효과적인 누룩이 되어야 한다는 은사와 책무를 부여받았다. 오늘날 개개인이 공동 운명의 일부임을 거부하는 ‘참여의 위기’가 팽배하고, 행복과 구원에 대한 개인주의적 개념이 지배하는 시대에, 교회는 앞선 내용과 같은 일치를 통한 친교와 관계 회복에 대한 소명과 예언자적 봉사를 수행함으로써 ‘하느님의 계획’을 증거해야 한다.[13-20]

 

하느님 백성의 성사적 뿌리

‘세례받음’ 곧,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성령 안에서 예수님께서 성부와 맺는 그 관계에 참여함을(삼위일체 하느님 안에 참여) 의미한다. 이 참여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로 모든 믿는 이가 복음의 진리에 대한 본능을 갖도록 돕는 ‘신앙 감각’(sensus fidei)이다. 이를 통해 교회는 세례받은 이들 전체가 신앙과 도덕 문제에 관하여 보편적인 동의를 표명할 때,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은 믿음에서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확신을 지니게 된다. 결과적으로 ‘신앙 감각’은 ‘신자들의 합의’(consensus fidei)가 도출되도록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세례성사는 시노달리타스의 원칙임과 동시에 교회의 일치의 토대가 된다. 이는 교회 일치 운동이 무엇보다도 영적 쇄신의 문제임을 깨닫게 한다. 삼위일체적 교회의 친교 여정은 세례를 완전히 이해하도록 도우며, 이 여정 속에서 우리는 각 지역 교회의 특수성에 따라 드러나는 다양한 양상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견진성사를 통해 드러나는 성령의 다양한고 풍요로운 은사를 받아들임으로써 체험하는 겸손과 창의적 주도성을 확인하는 영역으로 확대되며, 또한 성체성사 시낙시스(synaxis/성찬)와 시노도스(synodos)의 긴밀한 연관 관계로 완성된다. 성찬례와 시노드는 형식적인 모습은 다르지만, 결국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하신다는 예수님의 약속이 실현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21-27]

 

시노달리타스의 의미와 차원들

‘시노달리타스’(synodalitas)와 ‘시노달레’(synodale)는 함께 모여 대화하고 식별하고 결정하는 형태로 통합되며, 이는 관계적인 교회를 향한 열망을 드러낸다. 곧, 시노달리타스란 더욱 참여적이고 사명을 수행하는 것에 전념하는 교회,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며 남녀 모두가 동행할 수 있는 교회로 회복되기 위한 ‘영적 쇄신’과 ‘구조 개혁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시노달리타스는 다음 세 가지 교회 삶의 측면을 가리킨다: (1) 교회의 삶과 복음 선포 사명을 특징짓는 고유한 방식; (2) 개별적인 관점에서 보편적인 관점으로 확장되는 교회 구조와 절차들에 대한 권위 있는 식별: (3) ‘시노드 사건’을 통해 교회의 여정과 문제들을 식별하고 완수해 나가는 결정과 지침을 취하는 목적. 이러한 교회의 활동성 안에서 교회는 하느님 백성을 삼위일체 하느님과 이루는 결합인 친교를 표현하는 하느님 백성의 고유한 활동 방식의 특성들을 시노달리타스로부터 확인받게 된다. 결과적으로 시노달리타스는 최종적으로 권위를 행사하는 이들 모두를 포함하여 온 교회를 회심과 개혁으로 초대하는 것이다.[28-33]

 

 

조화로서의 일치

영적인 존재인 인간은 본디 상호 관계 안에서 완전해진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겨 주신 새 계명인 ‘상호(이중) 사랑’에 힘입어 관계들이 꽃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된다. 시노드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세례 받은 모든 이의 참여와 분화된 공동 책임 행사의 가능성을 확대하고자 하는 열망을 확인하였다. 그 열망은 교회의 관계적 쇄신을 일으키고 그 쇄신은 다양한 문화들이 다수성의 기초를 이루는 일치의 자리임을 깨닫게 하고, 그 문화들이 성령의 은사가 교환되는 장을 열어줌으로써 일치를 누리도록 이끌어준다. 종교와 문화의 다양성, 영적 신학적 전통의 다원성, 성령의 은사와 공동체 직무의 다채로움은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다른 관점들을 받아들이라는 초대이다. 그 초대를 통해 우리는 화합 그 자체이신 성령께서 교회 안에서 이루어주시는 친교와 일치를 확인하게 된다.[34-42]

 

시노드 영성/ 사회적 예언으로서의 시노달리타스

시노달리타스는 세례받은 이들의 일상생활과 교회 선교의 모든 측면에 스며드는 영적 자세이다. 시노드 정기 총회 제2회기 개막연설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언급하신 ‘성령의 음성을 식별하는 법을 배우는’ 교회의 첫 번째 임무가 성령의 활동으로 안내되는 시노드의 영성에 필수적이다. 이는 관상, 침묵, 마음의 회심이 동반되어야 하는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쇄신인 회심은 오직 은총의 우선성을 인정할 때 가능하다. 이를 위한 ‘성령 안에서의 대화’는 분명한 한계점이 있으나, 대화(conversazione)는 의사소통(dialogo)의 영역을 넘어, 조화로운 방식으로 생각과 감정을 어우러지게 하여 ‘모두에게 통용되는 활력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기에, 그 대화에는 궁극적으로 ‘회심’이 작용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회심은 결국 연대적인 실천을 통해 강력하게 공동체가 결합하도록 이끈다. 따라서 시노드의 여정을 통해 제시되는 ‘성령 안에서’의 대화는 진정한 복음적 분위기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나누는 경험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노드 정신을 사는 교회는 민족들에게 제시되는 이정표”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처럼, 시노달리타스 방식으로 관계를 살아가는 것은 구체적인 공동체 안에서 환영받고 인정 받고자 하는 인간의 갈망에 응답하는 사회적인 증언이다.[43-48]

 

 

[제2부 배 위에서 함께 – 관계들의 회심]

 

새로운 관계들/ 맥락의 다양성 안에서

시노드 여정이 이루어지는 동안, 세계 각지에서는 관계들을 북돋을 줄 아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요청들이 많았다. 모든 관계가 겪어온 갈등과 분열을 회복하고 연결하는 시노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관계의 진정한 회심’이 필요하다. 우리는 하느님의 선물이자 생명의 원천인 ‘다름’을 그것이 표현되는 다양한 방식과 맥락 안에서 환영하고 존중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오늘날 대두되는 이중적 상황 곧, 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악의 도구를 선택하는 현상들 속에서 교회는 분명한 관계의 회심을 요구받는다. 더 나아가 교회는 성직자나 교회 직분을 맡은 이들이 가하는 성적 학대, 영적 학대, 경제적 남용, 제도적 착취, 권력 남용, 양심을 거스르는 학대의 피해자와 생존자의 목소리에 특별한 관심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경청함으로써 이 회심, 치유 그리고 회복을 이루어야 한다. 시노드 여정에 함께했던 교회 일치의 노력에 대한 새로운 경험이 관계적 회심의 표지로 드러났고, 그 희망의 문을 열였다.[49-56]

 

사명을 위한 은사, 성소, 직무

세례받은 모든 이들은 사명의 필요성에 응답하며 성령의 고유한 은사의 도움으로, 새로운 분야와 새로운 방법을 발견해 나간다. 이는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역동성 덕분이며, 그리스도인들은 다양한 역량에 따라 복음 선포의 길을 걸어가고, 성령의 선물 곧 은사의 뒷받침을 받는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을 방치하지 말고, 파견받았으며 지지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게 해 달라고 교회에 요청한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차원에서도,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성령의 이끄심을 받은 여성들의 중대한 공헌을 우리는 확인한다. 또한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는 특별히 어린이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그들의 성장 과정에서의 동행뿐만 아니라, 그들이 겪었던 상처를 치유하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함이 분명하다. 젊은이들 역시 시노드적 교회 쇄신에 이바지할 수 있다. 이들은 특히 형제애와 나눔의 가치에 민감하고, 가부장적이거나 권위주의적인 태도들을 거부한다. 이들이 제기하는 ‘일상에서 함께 걸어가자’는 요청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의 전망과 일치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교회는 장애인들의 사도적 능력을 인정한다. 따라서 그들이 교회의 삶과 사명에 더욱 참여할 수 있도록 장려하기 위한, 장애에 관한 교회 연구소의 설립을 제안한다.[57-63]

시노드는 ‘성소’의 차원도 재확인한다. 최근 가정이 사목의 대상만이 아니라 주체라는 인식의 확장에 따라 교육에 관련된 교회 기관들 사이의 관계망 형성의 필요성이 요구되었다. 이와 함께 시노드 총회는 혼인과 성 윤리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자신들의 삶의 원천으로 인식하고 이를 충실히 하려는 선택으로 홀로 살아가는 삶을 받아들인 모든 사람에 대한 친밀감과 지지를 표명하였다. 축성 생활 역시 다양한 표현들로 제시되고 있다. 축성 생활은 고유한 예언자적 목소리로 교회와 사회에 도전을 제기하도록 부르심 받은 삶이다. 역사 안에서 축성 생활 공동체는 개별 은총과 공동 사명을 조화시키는 법을 통해 시노드 정신에 따른 식별의 실천과 경험을 발전시켜 왔음을 발견하게 된다. 성소의 관점에서 보자면, 선교 사명은 세례받은 모든 이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시노드를 통해 각각의 은사에 대한 식별과 기준, 도구와 절차가 갖추어져야 함을 인식하고, 모든 은사가 직무로 세워져야 하지도, 세례받은 모든 이가 직무자가 되어야 하지도 않으며, 모든 직무가 제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특별히 시노드 총회는 여러 교회의 봉사 가운데 ‘신학’이 신앙의 이해와 식별에 제시한 기여를 재확인하며, 신학 기관들이 지역 교회 안에서 시노달리타스의 의미를 명확히 하고 심화시키며 성소자들에 대한 양성에 동반하도록 하는 연구를 계속할 것을 요청한다.[64-67]

 

조화에 봉사하는 성품 직무

일찍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주교직의 성사성을 확언하고, 사제직의 친교적 현실을 회복하며, 종신 부제직 수행을 복구하기를 요청했다.[68]

[주교의 직무: 성령의 선물들을 일치 안에 모으기]라는 직무적 관점에서, 주교는 개별교회 안에 이루는 일치의 가시적인 근원이자 보편교회와 이루는 친교의 끈으로서, 다스릴 임무를 지닌다. 다만, 주교품을 받은 사람이 홀로 수행해야 하는 특권과 임무는 짊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직무적 봉사의 공동 책임을 맡고 있는 신부, 부제들과 함께 성사적 유대 안에서 직무를 수행한다. 이는 주교가 지니는 친교에 관한 고유하고 특별한 사명을 인식하게 한다. 따라서 주교 선출에 있어 하느님 백성이 더 큰 목소리를 갖기를 요청한다. 더불어서 주교들에게 지속 양성을 위한 과정을 제공할 필요성이 있음을 시노드 과정에서 확인했다. 주교의 직무는 하느님 백성 전체가 참으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의 사명에 참여하는 데에서 도움을 받기에 그 역시 공동체의 한 형제임을 기억해야 한다.[69-71]

[주교와 함께: 신부들과 부제들]의 직무적, 내적 관계성을 살펴야 한다. 신부들은 사제적 형제애를 살아가며 사목적 섬김 안에서 주교들과 함께 걸어가도록 부름을 받았다. 특히 축성 생활회, 사도 생활단 등 고유하고 다양한 은사로 사제단을 풍요롭게 하는 모든 이들과 교구 신부들을 통해 이어지는 고유한 전통과 영적 풍요로움이 참된 은사(선물)의 교환 속에서 동반과 지원이 필요함을 확인한다. 또한 부제들은 ‘사제직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봉사 직무를 위하여’ 성품을 받았다. 부제는 직무를 수행하는 가운데 사회적, 교회적 상황에서 선포된 복음과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삶 사이의 관계를 잘 드러낸다. 부제의 역할이 지닌 다양함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의 모습을 구체화한다.[72-73]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 안에서 성품 직무자들 사이의 협력]이라는 차원에서 시노드의 경험은 주교, 신부, 부제가 직무 수행에서 공동 책임을 재발견하도록 도와줄 수 있음을 확인한다. 성품 직무에 고유하게 속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용기 있게 식별하고, 영적으로 건강하고 사목적으로 활력이 있도록, 이들의 직무 수행에는 하느님 백성의 다른 지체들의 협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러한 점에서 직무의 베타성을 벗어나고, 성직주의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여 왜곡된 교회의 권위를 회복해야 함을 요청한다.[74]

 

사명을 위하여

교회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성품 직무와는 구분되는 몇몇 직무들을 탄생시켰다. 이는 특정 은사의 공인을 통한 고정화되며 생겨나는데, 대표적으로 제정의 직무, 독서직과 시종직 그리고 교리교사직 등이 있다. 또한 예식으로 세워지지 않지만, 관할 권위의 위임을 통한 고정적 직무 수행도 존재한다. 이러한 직무의 여부는 지역적 상황의 필요성에 따라, 평신도 직무 수행의 기회를 확대하고 고정화하는 가능성을 확인하게 한다. 넓게는 자발적인 봉사 역시 개별적인 은총과 은사를 통해 표현되는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는 사명의 하나로 이해된다. 이러한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협력과 분화된 공동 책임의 정신으로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라는 요청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교회 식별 과정에 평신도의 폭넓은 참여; (2) 교회의 교육 및 연구와 관련된 기관에 평신도 직책 부여; (3) 축성 생활자들에게 교회 내의 책임직 부여; (4) 교회법 판사 역할에 평신도 참여; (5) 교회와 기관 근무자들에 대한 권리 존중. 결과적으로 시노드의 과정은 이러한 각각의 사명과 직무의 친교와 일치를 위한 ‘경청’, 교회 내에 성사 집전, 교리 교육, 양성과 사목적 동반 등 교회 삶의 모든 측면에 필수적인 구성 요소임을 새롭게 체험하고 인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경청과 동반의 직무에 대한 필요성이 요청되기에, 교회에는 알맞은 방안과 식별 모델을 개발할 필요성이 요구된다.[75-78]

 

 

[제3부 “그물을 던져라” – 과정들의 회심]

 

시노드를 통해 우리는 선교 사명의 길을 가리켜 주시는 말씀에 응답하기 위한 실천으로 (1)교회적 식별, (2) 정성을 기울이는 결정 과정, (3) 내려진 결정의 결과를 책임감 있는 직무로 평가하는 노력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세 가지 실천은 상호 긴밀하게 상호 연결되어 있다. 결정 과정은 식별이 있어야 한다. 식별은 투명성과 책임감 있는 설명을 통한 신뢰의 분위기 속 경청을 통해 가능해진다. 신뢰는 상호적이기에 결정을 내리는 이들과 하느님 백성 사이의 상호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교회의 식별, 과정, 평가의 문화를 통해서 세례받은 모든 이가 지닌 ‘공동 책임성’이 강조된다. 따라서 이러한 책임 있는 임무 수행과 교회적 식별을 위해 봉사하는 이들은 특별한 양성이 요청된다.[79-80]

 

사명을 위한 교회적 식별

무엇보다도 식별은 주님께서 교회에 허락하시고 성령을 통해 세례받은 모든 이에게 전해지는 ‘신앙 감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교회적 식별은 단순히 조직을 운영하는 기술이 아니라, 신앙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내적 자유, 겸손, 기도, 상호 신뢰, 새로움에 대한 열린 자세, 하느님 뜻에 내맡기는 마음이 요구되는) 영적 실천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교회적 식별은 관련된 모든 이가 기여해야 하는 것이기에, 친교, 사명, 참여를 함께 경험하는 시노달리타스의 ‘조건’이자 동시에 ‘탁월한 표현’이다. 교회적 식별의 시작점이자 기준은 ‘하느님 말씀을 경청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하느님의 말씀은 개인의 양심 안에서도 활동하신다는 점에서 교회적 식별은 양심에 대한 지속적인 돌봄과 양심 형성 그리고 신앙 감각의 성숙을 요구한다.[81-83]

이러한 교회적 식별의 핵심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1) 명확한 대상 제시, 적절한 정보와 도구 활용; (2) 기도, 하느님 말씀 경청, 주제 성찰과 같은 적절한 준비 시간; (3) 이해관계를 넘어선 공동선의 추구; (4) 서로의 의견에 대한 존중과 경청; (5) 갈등을 감추거나 타협하는 것이 아닌 폭넓은 합의 도출; (6) 인도자가 합의 사항을 제시하고, 참가자 모두에게 공표하여 인정 여부를 표명하도록 요청. 이러한 요소들 가운데 식별은 구체적인 맥락 안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부분적 또는 근본주의적 접근을 피하는 적절한 성경 주석과 함께 여러 학문들의 도움을 받아 맥락과 전망을 진지하게 인식하여 식별을 진행해야 한다. 교회가 지닌 다양한 접근법과 방법론을 통해 여러 다른 맥락에 맞추어 식별한다면, 우리는 유익한 결실을 얻게 된다. 이는 특별히 지역 교회, 소공동체(본당)에서 시작하고, 식별의 문화를 증진하기 위하여 책임자, 동반자, 활성가들의 양성에도 힘써야 함을 깨닫게 한다.[84-86]

 

결정에 도달하는 과정의 연결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로 확장되는 효과적인 길은 결정을 내리는 과정들에 ‘하느님 백성 전체가 최대한 폭넓게 참여하도록’ 북돋는 것이다. 이는 식별하고 합의에 도달하는 다양한 구조와 제도의 실행을 통해 결정되는 본질적인 실천의 형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제자 공동체로부터 이어온 교회 공동체의 역사에서 확인되듯,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은 공동 결정을 위한 저마다의 능력과 재능을 소중히 여기면서 존중받아야 한다. 결정에 도달하는 과정은 일반적으로 ‘식별과 자문과 협력의 공동작업’을 통한 참여와 정교한 노력을 포함하고, 이후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결정을 내리는데 뒷받침한다. 최종적인 결정은 관할 권위의 책임이지만, 공동작업과 결정 두 단계 사이에는 어떠한 경쟁이나 갈등이 없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서 권위의 행사’란 독단적인 뜻을 강요하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권위는 언제나 친교에 봉사하고 그리스도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데에 봉사한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 안에서 주교와 주교단과 로마 주교의 의사 결정 책임은 양도될 수 없지만, 무조건적인 것은 아니기에 자문과 의결 사이에 어떠한 대립도 부적절함을 확인한다. 따라서 결정 과정은 다음의 요소들을 분명히 해야 한다: (1) 자문 및 의결의 대상과 결정을 내릴 주체의 명확성; (2) 자문하는 이들의, 학문적/양심적으로 성실/정직/명확하게 의견을 표명할 책임; (3) 친교의 유대에 따라, 공식화된 결정이, 자신의 관점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존중하고 실행하는 자세(평가와 상소 유효).[87-94]

 

투명성, 책임감 있는 설명, 평가

결정을 내리는 것이 결정 과정의 끝은 아니다. 그 과정에는 복음적 기준안에, 투명성의 정신으로 책임감 있는 설명과 평가하는 실천이 동반된다. 투명성의 자세는 결과적으로 ‘관계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시노드 교회에 없어서는 안 되는 신뢰와 신빙성의 보루이다. 이는 교회가 사명에 충실하도록 이끄는데, 투명성 실천의 부족은 성직주의의 결과 가운데 하나로서, 이는 책임감 있는 설명의 필요성을 저해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점에서, 시노드 교회가 환대하는 교회로 성장하려면, 책임감 있는 설명이 모든 차원에서 일상적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권위자가 공동체 앞으로 부름을 받아 책임감 있게 설명하는 차원까지도 회복될 필요성이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모든 종류의 직무적 책임이 어떻게 수행되고 있는지 역시 정기적으로 평가하는 구조와 형태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러한 방식들에는 참여적인 평가 방법론이 채택되어야 한다. 교회 연합체는 책임감 있는 설명과 평가 과정에 더 익숙한 사람들 특히 평신도들의 전문성을 활용하고, 이미 존재하는 좋은 관행들을 식별하여 이를 교회적 맥락에 적용해야 한다: (1) 재무 평의회 운영; (2) 사목/기획 재정에 하느님 백성의 실제적 참여; (3) 자산 및 재정 관리의 투명성을 위한 외부 감사 준비 및 공표; (4) 교회 보고에 대한 평신도들의 권위 있는 접근 및 결정 과정에 참여(와 그 비율 제시); (5) 교회 안, 모든 직무와 직책 수행에 대한 정기적 평가. 우리는 이러한 과정이, 관료주의적 임무가 목적이 아니라 소통의 노력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95-102]

 

시노달리타스와 참여 기구들

앞서 살펴본 결정 과정에 세례받은 이들의 참여만이 아니라 책임감 있는 설명과 평가의 실천은 지역 교회 차원에서 교정하는 여러 참여 기구를 통해 수행된다. 이를 토대로 시노드의 작업 방법과 참여 기구의 운용 방식을 재확인할 수 있다. 먼저, 성령 안에서의 대화를 준거점으로 삼아 구성원 선정에서부터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를 통해 남녀노소, 경제력의 고하, 더 나아가서는 타종교의 대표까지도 다양한 차원의 대상자를 선정할 수 있다. 시노드 총회가 기초 공동체 차원의 사목 평의회부터 교구 사목 평의회에 이르는 네트워크의 구축을 넘어서 자문과 경청의 본보기로 모든 차원의 정기적인 회합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요구된다. 따라서 각 지역 교회의 특성이 반영되는 교구 시노드와 동방 교구 총회의 정기적인 개최를 규정하는 교회법 조항이 요구된다.[103-108]

 

 

[제4부 풍성한 고기잡이 – 유대들의 회심]

 

예수님의 부활 이후 다시 그분의 말씀대로 고기를 낚았던 베드로에게는 특별한 역할이 부여되었다. 그것은 바로 많은 고기를 잡기 위해 모든 이가 힘을 합치는 것처럼, 제각기 다른 이들의 임무가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특별한 역할이다. 이것이 바로 시노드의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이다.[109]

 

뿌리 내리고 순례하는

복음 선포는 신앙을 일깨워 구체적인 지역에 교회가 세워지게 한다. 교회는 여러 특정한 문화적/역사적 맥락에 뿌리내리는 신앙 표현의 풍부함을 보전하게 하며 그 시공간 속에서의 친교를 이룬다. 이러한 점에서 시노달리타스 회심은, 개개인이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분의 교회와 맺는 인격적인 관계 안에 뿌리내리고, 우리의 모든 관계가 생겨나는 첫 번째 “자리”인 마음의 터를 넓히라고 모든 이를 초대한다. 이와 관련된 ‘뿌리내림’의 경험은 장소에 대한 근본적인 사회문화적 인식의 변화에 대처해야 할 필요성을 요구한다. 전통적인 지역적 유대의 의미가 바뀌기에 교회 역시 본당과 교구의 경계가 덜 분명해졌음을 인정해야 하며, 더더욱이 선교적인 창의성을 지니기를 요구된다. 특히, 디지털 문화의 확산도 시공간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고, 믿음을 포함하여 그들의 일상적인 활동, 커뮤니케이션,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문화적 발전과 변화는 교회가 자신의 사명에 더욱 충실하기 위하여 교회의 ‘지역적’ 차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그 구조적 형태를 논의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지리적 문화적 상황에 뿌리내린다는 가치를 통해 ‘장소’가 지니는 경험적 현실을 이해하면서, 확장된 인식 가운데, 교회는 환영, 환대, 포용의 가능성을 표상하는 ‘집’이라는 공간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다시 수행해야 한다. 결국 이러한 성찰은 지역 교회의 기본 단위인 ‘본당’이라는 공동체를 새롭게 이해해야 할 필요성에 접근하도록 이끈다. 본당 공동체는 선택에 기반하여 이루어지지 않는 공동체라는 특징이 있다. 시대적 요구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이동성과 그 삶이 전개되는 ‘실존의 영역’을 고려하여 새로운 형태의 사목 활동을 모색해야 한다. 이러한 본당에 대한 지역적 인식의 확장은 시노달리타스를 구체적으로 살아갈 기회를 제공하고, 더 나아가 국내외 차원의 다양한 공간을 연결하는 축성 생활단을 포함한 여러 단체와 연합 및 운동의 노력으로 연계되어 복음 선포의 사명을 수행하게 만든다.[110-119]

 

선물들의 교환

은사와 직무의 다양성과 개별교회들 사이 선물의 교환을 통한 동행은 하느님 나라를 향한 인류의 여정을 인도하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의 현존을 드러내는 효과적인 표징이다. 교회는 지역 차원에서 그리고 교회의 보편적 일치 안에서 만남의 문화, 사회 정의, 소외 계층의 포용, 민족 간 형제애, 공동의 집 돌봄에 관한 예언을 순환시키고 촉진하는 관계망이 되기를 요청받는다. 하나의 가치에 대한 매몰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정체성을 존중하며, 건강한 상호성을 증진하면서 연대의 정신으로 나눔을 통해 이러한 선물들의 교환을 실천해야 한다. 더불어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삶의 다양한 장소에서 타 종교 신자들과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까지도 함께 복음의 기쁨을 무상으로 나누고, 그들 본연의 선물을 감사히 받아들이면서 동행의 길을 걷고자 정성을 다해야 한다.[120-123]

 

일치를 위한 유대: 주교회의들과 교회 회합들

선물의 교환을 통한 친교의 지평은 궁극적으로 교회 간 관계에 영감을 주는 기준이 된다. 이러한 교환을 통한 친교는 온 교회의 일치를 위한 유대에 관한 관심, 지역 교회가 지닌 맥락과 특수성에 대한 인식과 인정을 결합하도록 이끈다. 이러한 점에서 특별히 주교회의는 개별교회 사이에 친교를 촉진하고 사목적 필요성에 효과적인 대응을 위한 단체성을 표현하고 실현한다. 또한 ‘건실한 분권화’와 신앙의 효과적 토착화를 위해서는 주교회의뿐만 아니라, 관구 혹은 전체/개별 공의회에 대한 제정 역시 재평가할 필요성이 있다.[124-129]

 

로마 주교의 봉사

개별교회와 보편교회의 공동체적/단체적/개인적 차원을 조화롭게 표현하는 시노달리타스는, 그 의미와 과정을 통해 로마 주교의 직무 수행에 대한 방식을 새롭게 검토하도록 이끈다.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로마 주교는, 시노드 과정이 일치와 증언을 위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보증하면서 신앙과 도덕의 유산을 지키는 유일한 역할을 맡고 있다. 또한 로마 주교는 다양성 안에서 일치의 보증으로서 동방 가톨릭교회와의 논의를 통해 그들의 전통을 존중하고 정체성을 보장하여 ‘선물 교환’과 ‘협력’의 풍요로움을 드러내야 한다. 앞서 살핀 베드로 직무의 수행을 시노드 정신으로 성찰한다면, 교회는 교황과 주교회의가 요청하는 ‘건실한 분권화’의 전망을 지녀야 함을 깨닫게 된다. 이를 통해, 교회라는 구체적인 ‘친교의 신비’(mysterium communionis)의 열매이자 표현인 “공동 책임”으로 행동하는 일치된 교리와 규율, 친교가 피해받지 않는 ‘건실한 분권화’가 수행되고, 시노달리타스 수행을 통한, 교회적 식별을 가능하게 한다. 이번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의 구성은 우연적이게도 ‘교회의 살아있는 전통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주교 직무 수행 방법’을 표현하였고, 결과적으로 2021-2024년 시노드의 중요한 결실은 “교회 일치를 위한 움직임”이 강력하게 일어남으로써 ‘새로운 상황에 개방적인 수위권 행사 방식’이 요구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시노드 총회는 이 「최종 문서」를 통해 그리스도인들과 ‘명백하게 함께’ 협력하여 ‘서로가 인정하는 사랑의 봉사’로서 로마 주교의 일치에 대한 직무 수행에 관한 깊은 성찰의 기반이 되기를 희망한다.[130-139]

 

 

[제5부 “나도 너희를 보낸다” – 선교하는 제자들의 백성으로 양성하기]

 

성령의 숨결로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어 사명을 수행하는 제자들의 백성이 탄생한 것처럼,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모든 이에게 복음의 기쁨을 증거하고 시노달리타스를 실천을 통해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한 적절한 양성이 필요하다. 교회의 시노달리타스 양식에 관한 양성은 세례로 받은 선물들이 모두의 선익을 위하여 열매를 맺어야 할 탈렌트라는 인식을 증진하게 만든다. “선교하는 제자들의 양성”은 그리스도교 입문에서 시작하고 뿌리를 두며, 점차 교회의 친교 안에서 공동체를 만나게 된다. 다만, 입문이 끝나면 유대가 약해지면서 양성이 소홀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양성은 지속적인 회심을 통해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함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특별히, 성찬례 거행 곧, 미사 안에서 한 사람의 주재 아래, 몇몇 사람의 직무 덕분에, 모든 사람이 말씀과 빵의 이중 식탁에 함께 함을 통해 시노달리타스를 위하여 무엇보다도 중요한 “능동적 참여”를 이끄는 방식으로 친교와 사명이 실현되며 새로워진다. 시노드 과정을 통해서 강력하게 요청되는 사항은, 바로 양성이 통합적이고 지속적인 모습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140-144]

 

시노달리타스로부터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양성 활동들로 ‘밖으로 나가는’ 그리고 ‘밖을 지향하도록 이끄는’ 교리 교육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더 넓은 범위에서 가톨릭 교육 기관들은 교회 환경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는 점에서, 시노달리타스 실천에서 영감을 받는다면, 우정과 참여의 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실험실이 될 수 있다. 양성은 다양한 소명들 사이의 선물 교환(친교)으로서, 수행해야 하는 봉사의 관점(사명), 분화된 공동 책임에 대한 참여와 교육 방식(참여)에서 실행되어야 한다. 이 점은 ‘사고방식을 전환하려는 노력, 양성 환경과 과정의 새로운 정립’이 요구에 대한 응답이 될 것이다. 양성 과정은 후보자들에게 만민선교의 열정을 일깨울 수 있어야 한다. 주교들의 양성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양성의 시노달리타스 방식은 성품 직무로 나아가는 과정의 모든 측면에 교회 일치의 차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포함한다. 이러한 시노달리타스로 양성하는데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정 영역을 고려해야 한다: (1) 디지털 환경이 학습 과정/집중력/자아와 세상에 대한 인식/대인관계 형성에 미치는 영향; (2) 모든 교회 환경에서 보호 문화를 증진하여 미성년자와 취약한 이들에게 더욱더 안전한 공동체를 마련; (3) 사회교리와 관련한 주제를 다뤄, ‘선교하는 제자들’의 행동이 정의롭고 형제애 넘치는 세상을 위해 역할을 하도록 양성. 결국 이와 같은 양성의 모습은 교회가 역사 안에서 살고 구현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복음화 사명의 일부이다.[145-151]

 

 

[결론 – 모든 민족을 위한 잔치]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의 「최종 문헌」이 함께 걸어온 고기잡이 기적 이야기는 잔치의 장면으로 끝난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뒤에 제자들을 위하여 준비하신 식탁은 이미 시작된 종말론적 잔치의 표징이다. 그 충만함은 하늘에서 이루어지겠지만, 은총과 자비의 식탁은 이미 모든 이를 위하여 준비되었고, 교회는 변화하는 세상에서 이 놀라운 소식을 전할 사명이 있다. 우리는 시노드 과정을 통해, 우리가 수용하고 선포하는 구원은 ‘관계’를 통해 전해진다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였다. 창조 세계 자체가 바로 일치와 나눔, 다양성과 어우러짐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노달리타스의 궁극적 의미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하느님, 당신 자신을 세상에 내어 주시고자 당신 밖으로 나오신 ‘사랑의 조화’이신 그분을 증언하도록 교회가 부르심 받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의 성소와 은사와 직무가 시노드 방식으로 살아가고, 모든 이에게 복음의 기쁨을 전하기 위하여 만나러 갈 때, 하느님과 온 인류와 모든 피조물과 함께 구원의 친교를 살아갈 수 있다. 이 나눔은 하느님께서 모든 민족을 위해 마련하신 생명의 잔치를 이미 체험하기 시작한 것이다.[152-155]

 

바티칸에서

2024년 10월 26일

프란치스코